매달 월급에서 빠져나가 어딘가 쌓이고 있는 돈이 있다. 바로 퇴직연금이다. 그런데 정작 그 돈이 지금 DB로 굴러가는지 DC로 굴러가는지, 어떤 상품에 담겨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노후소득의 3층 구조에서 퇴직연금은 국민연금(1층)과 개인연금(3층) 사이, 2층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국민연금만으로 노후가 부족하다는 건 다들 안다. 그렇다면 그다음으로 큰 목돈인 이 2층을 방치해도 될까? 퇴직연금 DB·DC·IRP의 차이와 운용법을 모르면, 내 돈이 저수익에 묶여 있어도 알아챌 수가 없다.

이 글은 "내 건 DB야 DC야", "IRP는 뭐고 어떻게 굴리나", "퇴직하면 이 돈은 어떻게 되나"가 궁금한 직장인과 이직·퇴직을 앞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세제 수치는 모두 2026년 현재 기준이며, 제도는 해마다 바뀌니 실제 판단 전에는 국세청과 통합연금포털에서 최신 내용을 반드시 확인하기 바란다.

퇴직연금, 3층 연금에서 어디쯤 있나

퇴직연금은 2005년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으로 도입된 제도다. 회사가 퇴직급여를 사내에 쌓아두던 예전 방식은 회사가 도산하면 근로자가 한 푼도 못 받을 위험이 있었다. 이를 금융회사에 사외적립해 수급권을 보호하려고 만든 것이 퇴직연금이다.

규모는 이미 상당하다. 적립금은 2025년 말 기준 501조 4,000억 원으로, 1년 만에 16.1% 늘었다. 그만큼 내 몫도 조용히 커지고 있는 셈이다.

제도는 세 가지다. 회사가 굴리고 책임지는 DB형(확정급여형), 내가 직접 굴리는 DC형(확정기여형), 퇴직급여가 모이고 개인이 추가로 납입하는 IRP(개인형 퇴직연금). 이 셋의 성격을 알아야 내 돈의 위치가 보인다.

DB형과 DC형, 무엇이 다른가

먼저 DB형이다. 받을 퇴직급여가 미리 정해져 있는 구조다. 통상 '퇴직 직전 평균임금 × 근속연수'로 계산되는데, 우리가 아는 옛 퇴직금 산식과 거의 같다. 적립금은 회사가 굴리고, 운용 성과가 좋든 나쁘든 내가 받을 금액은 변하지 않는다. 운용 리스크를 회사가 진다는 뜻이다.

DC형은 반대다. 회사가 매년 내 연간 임금의 약 12분의 1에 해당하는 돈을 내 계좌에 넣어주고, 그 돈을 내가 직접 굴린다. 잘 굴리면 퇴직급여가 늘고, 손실이 나면 줄어든다. 성과도 리스크도 모두 내 몫이다.

그럼 어느 쪽이 유리할까? 핵심은 임금상승률과 운용수익률의 비교다. 승진·호봉으로 임금이 꾸준히 오르는 장기근속자라면, 마지막 임금으로 계산되는 DB형이 유리한 편이다. 반대로 임금이 정체됐거나 이직이 잦고, 스스로 굴릴 자신이 있다면 DC형이 나을 수 있다.

특히 임금피크제를 앞두고 있다면 판단이 중요하다. 임금이 꺾이면 DB형의 산정 기준 임금도 함께 낮아지기 때문이다. DB에서 DC로 갈아탈지, 임금이 꺾이기 전에 미리 따져봐야 한다.

한 가지 더. 전환에는 방향이 있다. 회사가 두 제도를 모두 두고 있다면 DB에서 DC로는 옮길 수 있지만, DC에서 DB로 되돌아가는 역방향 전환은 원칙적으로 안 된다. 운용 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사에 떠넘기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DC로의 전환은 한 번 더 신중하게 판단하는 게 좋다.

IRP, 퇴직급여가 모이고 세액공제까지

IRP는 성격이 두 개다. 하나는 퇴직할 때 퇴직급여를 받는 '수령·이전 계좌'이고, 다른 하나는 소득이 있는 개인이 추가로 납입해 세액공제를 받는 '개인 저축·투자 계좌'다. 이 두 얼굴을 헷갈리면 IRP를 이해하기 어렵다.

퇴직하면 퇴직급여는 원칙적으로 IRP 계좌로 자동 이체된다. 예외는 두 가지다. 퇴직 시 만 55세 이상이거나, 퇴직급여가 300만 원 이하인 경우에는 일반 계좌로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개인 돈을 더 넣을 수도 있다. 연금저축과 합쳐 연 1,800만 원까지 납입할 수 있고, 그중 900만 원까지 세액공제 대상이다. 다만 급하다고 IRP를 함부로 깨면 안 된다. 중도해지하면 세액공제 받았던 납입금과 운용수익에 16.5%의 기타소득세가 붙어, 그동안 받은 혜택을 도로 토해내거나 그 이상 손해 볼 수 있다.

퇴직연금 운용법 — 방치가 가장 큰 손해

DC형과 IRP는 내가 굴리는 계좌다. 굴릴 상품은 크게 두 갈래다. 원리금보장형은 예금처럼 원금과 이자가 보장되는 안전한 쪽이고, 실적배당형은 펀드·ETF·TDF처럼 성과에 따라 수익이 오르내리는 쪽이다. TDF는 은퇴 시점에 맞춰 위험자산 비중을 자동으로 줄여주는 상품으로, 손이 덜 가는 선택지다.

상품을 아무것도 지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이때 작동하는 것이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다. 2023년 7월 12일부터 본격 시행됐고, DC와 IRP에만 적용된다. 미리 정해둔 상품으로 자동 운용해주는 안전장치인 셈이다.

문제는 이 안전장치가 '저수익 고착'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점이다. 디폴트옵션 적립금은 53조 원을 넘었지만 안정형(초저위험)에 쏠려, 2025년 평균 수익률은 3.7%에 그쳤다. 물론 상품·기간별 편차는 크니 이 숫자는 하나의 예시로만 보면 된다.

그러니 퇴직연금의 진짜 리스크는 '손실'이 아니라 '방치'다. 내 성향에 맞는 상품을 고르고, 1년에 한 번쯤은 수익률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결과가 달라진다. 수수료가 부담된다면 갈아타는 방법도 있다. 2024년 10월 31일부터 시행된 현물이전(실물이전)을 쓰면, 보유 상품을 팔지 않은 채 수수료가 더 낮은 금융사로 계좌를 옮길 수 있다. 단 DB·DC·IRP는 같은 유형끼리만 이전되고, 일부 상품은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은 미리 확인하자.

세제 혜택과 흔한 오해 바로잡기

IRP를 굴려야 하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세금이다. 연금저축과 합산 900만 원까지 세액공제를 받는데, 공제율은 총급여 5,500만 원(종합소득 4,500만 원) 이하면 16.5%, 초과면 13.2%다(지방소득세 포함). 5,500만 원 이하 구간에서 900만 원을 꽉 채워 넣으면 최대 148만 5,000원을 돌려받는다. 매년 받는 혜택이라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다.

혜택은 받을 때도 이어진다. 연금으로 수령하면 연령별로 낮은 세율이 적용된다. 55~69세는 5.5%, 70~79세는 4.4%, 80세 이상은 3.3%다. 퇴직급여 부분도 연금으로 받으면 퇴직소득세를 연금수령 10년 차까지 70%, 이후에는 60%만 부담해 일시금보다 유리하다.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 "DB는 안전하고 DC는 위험하다"는 단순화다. DB의 '안전'은 회사 운용 결과와 무관하게 급여가 확정된다는 뜻일 뿐이다. 임금이 정체되거나 임금피크제로 꺾이면, 오히려 잘 굴린 DC가 더 나은 결과를 줄 수도 있다. 정답은 제도가 아니라 내 상황에 있다.

다만 이 수치들은 2026년 현재 기준이라는 점을 다시 강조한다. 세법은 해마다 손질되므로, 실제 납입이나 수령을 결정하기 전에 국세청 홈택스와 통합연금포털에서 그해 기준을 반드시 다시 확인해야 한다. 이 글은 특정 상품이나 투자를 권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이해하도록 돕는 정보성 안내다.

오늘 확인해야 할 단 하나

내 퇴직금이 지금 어떻게 굴러가는지 아는가. 이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했다면, 그것 자체가 가장 큰 신호다. 퇴직연금에서 가장 손해 보는 사람은 손실을 낸 사람이 아니라, 자기 계좌를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사람이다.

거창한 재테크가 필요한 게 아니다. 오늘 당장 할 일 하나만 고르자면, 내가 DB인지 DC인지부터 확인하는 것이다. DC나 IRP라면 지금 어떤 상품에 담겨 있는지, 원리금보장형에 방치돼 있지는 않은지 한 번만 들여다보자.

3층 연금 중 2층은 남이 아니라 내가 세우는 기둥이다. 그 기둥이 지금 어떤 모양인지, 확인하는 데는 몇 분이면 충분하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